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밀턴 오보테 (문단 편집) === 1차 대통령 시기 === 그러다가 오보테는 1964년 말에 후에 대령으로 승진한 이디 아민과 함께 [[콩고민주공화국]] 동부의 반군을 이끌던 크리스토프 그베니예(Christophe Gbenye, 1927?~2015)를 비밀리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금 밀수에 가담하여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몰리는데, [[1966년]] 초반부터 의회는 오보테에 대한 조사와 아민의 축출을 요구했다. 이에 오보테는 자신의 경쟁 파벌의 지도자였던 내각 구성원 4명을 혐의 없이 구금하고는 헌법을 중지시킨 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는 1966년 2월 24일에 대통령 직무 정지를 선포하고는[* 그 하루 전에 이디 아민은 육군 및 공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4월 15일에 자신을 우간다의 새 대통령으로 선포하고는 무제한적인 권력을 자신에게 할당했다. 그러고는 5월 22일에 아민을 시켜 무테사의 궁전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아민은 이 명령을 충실히 따라 5월 23일부터 이틀간 무테사의 궁전을 포위 공격하여 무테사의 궁전을 불태웠으며, 자원봉사자들은 궁전 인근에서 무테사측 인원의 시체를 200구 넘게 봤다고 한다. 이후 무테사는 가까스로 빠져나가 [[영국]]으로 도피했으나 45세 생일로부터 정확히 이틀 뒤인 [[1969년]] 11월 21일에 런던의 아파트에서 의문의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오보테는 1967년 9월자 개헌으로 부간다를 포함한 우간다의 모든 왕국과 독립헌법의 연방구조를 폐지하고는 행정부 수반을 신설하며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고, 1969년 12월 19일에 2명의 암살자에게 암살당할 뻔하자 그 보복으로 모든 야당 활동을 금지시켰다. 그가 집권할 대부분의 기간 동안 비상사태가 발효되며 많은 오보테의 정적들이 재판도 없이 무기한 투옥되었고, 특히 오보테의 사촌이 이끌던 비밀 경찰은 우간다 국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친영·친서방 정책을 펼친 무테사와 달리 오보테는 친소·친동방 정책을 펼치며 1970년까지 국내 주요 기업과 은행 주식의 51%를 국유화하는 '사회주의'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극심해지고[* 다만 오보테는 적어도 해외 비자금은 전무했다고 한다.] 특히 우간다의 상권을 지배하던 [[인도인]] 상인을 탄압하면서 식량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 종래의 종주국 영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오보테에 불만을 가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